근 품종의 식물학적 특징, 개발 배경, 기후변화 대응 가능 여부 등 원론적인 내용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단적인 예로 지난해 ‘키마커피Qima Coffee’는 예멘 품종 그룹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며 화제가 됐다.[1]
생두 크기나 모양, 커피열매의 색, 잎의 색과 같은 외형이 다르면 품종도, 향미 품질도 다를 것이라고 여겨지는 게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과연 정말 분홍색을 띠는 핑크버번은 실제로 향미가 독특할까?
커피체리 색의 생화학적 측면
꽃이나 과일, 채소가 지닌 다채로운 색은 세포에 존재하는 색소체 덕분이다. 그중에서 덜 익은 과일이나 잎이 초록색을 띠는 이유는 녹색 색소인 클로로필Chlorophyll 때문이다. 단풍이 들거나 과일이 익어가면서 색이 변하는 이유는 클로로필이 감소하는 반면 빨간색, 주황색, 보라색, 노란색 등을 띠는 카로티노이드Carotenoid와 안토시아닌Anthocyanin 색소체 그룹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화제의 핑크 버번
몇 해 전 느닷없이 등장한 핑크 버번은 분홍빛 체리 색을 내세워 많은 로스터의 눈길을 끌었다. 콜롬비아의 한 농장에서 발견된 것으로 알려진 이 품종은 레드 버번과 옐로우 버번의 교배종으로 전해지며 과육이 더 많다거나 단맛이 더 높다는 소문도 있다. 이로 인해 한때 국내에서는 게이샤 품종 다음으로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내용에 따르면 핑크 버번의 분홍색은 빨간색과 노란색 체리의 중간형질로 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핑크 버번의 사진을 다양하게 살펴보면 분홍색보다는 빛바랜 빨간색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럼 분홍색은 어떻게 발현될까?
아쉽게도 핑크 버번에 대한 자료가 전무해 분홍색의 원리에 대해선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브라질의 초기 옐로우 품종 유전연구와 바로 위에서 다뤘던 색소체 발현 연구 결과로 추측해볼 수 있다. 과일의 색은 색소체들의 성질과 조합, 양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돌연변이로 인해 분홍색을 발현하는 유전자가 만들어졌다기보다는 빨간 색소 합성에 관여하는 유전자의 발현량이 더 낮아서 분홍색 또는 주홍색처럼 보일 가능성이 크다.
비슷한 사례인 핑크 토마토의 경우, 성숙기에 노란색 색소를 띠는 플라보노이드Flavonoid인 ‘나린제닌 칼콘Naringenin Chalcone’이 합성되지 않아 분홍색으로 보였고[2] 보라색 대신 노르스름한 색을 띠는 가지는 나린제닌 칼콘의 함량이 보라색 가지보다 높았다.[3]
그럼 핑크 버번이 다른 커피보다 당도가 높다거나 향미가 우수하다는 말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일단 핑크 버번에 관한 자료나 유전연구 결과가 거의 없는 관계로 이어지는 내용은 필자의 사견이며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음을 밝힌다.
사실 시중에 유통되는 핑크 버번은 애초에 버번 품종이 맞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개인적으로 ‘체리의 색상만으로는 향미가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핑크 버번이 옐로 버번과 레드 버번의 교배종이라면 두 부모의 형질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고로 자손이 갑자기 우수한 형질을 보이긴 어려울 것이다.
둘째,
커피는 생과로 섭취하지 않기 때문에 단순히 색소체의 발현 차이라면 향미에 크게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다. 티피카의 변이로 알려진 노란색의 아마멜로 드 보투카투도 체리 색을 제외하고는 레드 티피카와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고됐다. 또, 체리 색상 변화는 브라질과 콜롬비아뿐 아니라 에티오피아에서도 발견되는 흔한 변이 중 하나다.[4]
셋째,
만약 분홍색 커피체리의 향미가 다른 색의 체리보다 더 좋다면 이는 색상의 변이로 인한 결과라기보다는 색상과 연결되어있는 요인의 변이로 인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