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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의 투명성을 담은 커피 이름에 숨겨진 이야기

비즈니스 스터디

커피의 투명성을 담은 커피 이름에 숨겨진 이야기 커피를 명명(命名)하다
커피의 이름은 커피를 지칭하는 고유명사이자, 커피의 특성에 대한 가장 짧고도 객관적인 정보입니다. 커피 제3의 물결인 ‘스페셜티 커피’의 뒤를 잇는 제4의 물결이라 할 수 있는 ‘생산국과 소비국의 밀착’은 새로운 시장 상황의 면면을 담고 있습니다. 커피의 이름은 이 모든 것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며 때로는 ‘환상’, ‘착각’을 불러오기도 합니다.
커피 생산국을 방문해 본 사람이라면 많은 농장이 이름을 따로 정해 두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을 것 입니다.(물론 이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농장도 많습니다). 생산자들은 커피를 재배하고 완성하는 일에 몰두한 나머지 농장의 이름을 제대로 만들지 않습니다. 그들은 소비국의 바이어가 방문해서 농장명을 물으면 당황스러워하거나 즉석으로 이름을 붙이곤 합니다. 결국, 커피 농장의 이름은 매우 간단하게 결정됩니다. 생산자의 이름을 붙이거나 농장이 위치한 지역의 특산품 혹은 상징물에서 이름을 따오는 등 생산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정해집니다. 하지만 소비국의 사람들, 특히 대한민국의 소비자들은 농장의 이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농장의 철학을 담고 있거나 가치를 담은 이름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커피를 소비할 때 이름을 꼭 확인한다는 한 커피 애호가는 “농장명이 주는 이미지가 구매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편 입니다. 물론 품종이나 가공까지 꼼꼼하게 살펴보고 구매를 결정합니다. 농장에서 이런 이름을 짓고 품종과 가공법을 특별하게 표현한 목적이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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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통적 이름에 담긴 이야기

커피의 이름은 전통적으로 아래와 같은 구조를 지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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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스페셜티 커피의 유행과 함께 이름이 길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파나마 라 에스메랄다 노리아 카르나발 게이샤 내추럴Panama La Esmeralda Noria Carnaval Geisha Natural’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먼저 ‘파나마’는 국가의 이름, ‘라 에스메랄다’는 농장의 이름입니다. 농장 내 특정 구역을 지칭하는 ‘노리아’는 하 라미요Jaramillo 존의 구역을 가리킵니다. 또, ‘카르나발’은 수확한 달을 상징하는 가톨릭적 의미를 담고 있는 표현으로 ‘3월’을 뜻합니다. 이 외에 ‘산 호세San Jose(2월)’, ‘파스쿠아Pascua(4월)’ 등의 표현이 있습니다. 그리고 품종 이름 ‘게이샤’, 가공법 ‘내추럴’로 이름이 끝납니다.
이처럼 현재 우리가 접하는 커피 이름에는 생산국뿐 아니라 세부 지역 중에서도 특정 구역과 수확한 달, 품종, 가공 등 많은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한 개인 카페 대표는 이에 관해 “고객들이 커피의 이름을 유심히 보는 편이다. 이름을 보며 무엇인지 묻는 사람도 많이 늘어났다. 그래서 커피를 구매할 때 이름을 따지 기도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이름을 제대로 갖추고 있다면 좋은 커피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꽤 많아졌습니다. 앞서 설명한 이름은 사실을 기반으로 한 명칭인 만큼 소비자들에게 혼란을 주지 않습니다. 생산국이나 지명 등 지리적인 정보와 품종 및 가공법을 있는 그대 로 표현하고 있으므로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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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각 커피의 이야기를 담은 이름

얼마 전까지 사실을 기반으로 커피의 이름이 결정됐다면 최근에는 다양한 커피 이름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재배와 관련된 변수를 스토리화해 활용하거나 가공과 관련된 사항을 담은 이름 그리고 품종과 관련된 변수를 적용한 것 등 다양한 성격의 이름이 나타났습니다.

과테말라 산타펠리사Santa Felisa 농장은 꽤나 빠르게 커피 이름에 스토리를 담은 사례 입니다. 예를 들어 ‘솔라 눈 게이샤 2722 아나로빅 퍼먼테이션 이노큘레이티드 위드 사카로미세스 세레비시아 내추럴Solar Noon Gesha 2722 Anaerobic fermentation inoculated with Saccharomyces cerevisiae Natural’ 같은 이름 입니다. 먼저 ‘솔라 눈’은 ‘태양이 가장 높은 시점인 정오 에 수확했다’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게이샤 2722’는 게이샤가 케냐의 품종 연구소에서 코스타리카로 처음 전파될 당시의 일련번호인 ‘2722’를 병기 해 정통성 있는 게이샤 품종이라는 뜻을 지닙니다. 또, ‘아나로빅 퍼먼테이 션 이노큘레이티드 위드 사카로미세스 세레비시아 내추럴’은 ‘맥주 효모를 접종하는 방식으로 무산소 발효한 내추럴 가공 커피’라는 뜻 입니다. 각종 정보를 이름에 모두 나열함으로써 커피의 투명성은 보장되지만, 이처럼 너무 긴 이름 때문에 자칫 본질이 흐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반면이름이 지닌 임팩트가 커진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산타펠리사 커피를 수년간 구매해 왔다는 한 구매자는 “산타펠리사 농장의 커피는 다른 농장의 것과는 다르게 다양한 정보를 구체적으로 담은 이름이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사실에 기반한 정보와 감성적인 이야기가 더해진 덕에 고객들에게 더 좋은 스토리텔링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매년 이곳 커피를 구매해왔고 만족도도 높은 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긍정적인 의견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이름만 들으면 엄청난 커피 일 것 같다는 예감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과대포장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정보를 자세히 읽어보기 전에는 어떤 커피인지 직관적으로 와닿지 않기에 다소 어렵다” 라는 의견을 개진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산타펠리사 농장은 다양한 시도를 통해 스토리텔링을 이어가는 농장 입니다. 수확할 당시의 날씨, 음력(陰曆), 이미지 등을 이름에 적극적으 로 적용한 사례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썬라이즈Sunrise’, ‘스타 라이트Star light’처럼 날씨나 시간을 활용한 이름과 ‘풀문Full moon’, ‘블러드 문Blood moon’ 같은 음력의 신비로움을 담아낸 이름이 존재합니다. 그중에서 음력을 이름에 적용하는 것은 지구와 달, 태양의 위치와 공전 주기 등을 고려했을 때 보름달이 뜨는 날 체리를 수확해야 열매에 가해지는 손상이 가장 적다는 데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이는 커피뿐 아니라 다른 작물에도 폭넓게 적용 되는 농업적 관점의 스토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산타펠리사 농장뿐만 아니라 파나마의 데보라Deborah, 브라질의 다테하 Daterra 등 여러 농장에 저마다의 스토리를 담은 이름의 커피가 다수 존 재 합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이름으로 ‘만개(滿開)’를 뜻하는 ‘풀 블룸Full Bloom’을 꼽을 수 있습니다. 다테하 커피를 수입·유통하는 <어라운드 커피 > 탁영준 대표는 “브라질은 생산량이 워낙 많아 내추럴 가공을 할 수밖에 없는 조건으로 여겨지지만, 지역마다 약간의 기후 차가 존재합니다. 다테하 농장은 체리가 나무에 달린 상태로 건조하는 ‘드라이온더트리Dry on the tree’의 완성도가 다른 지역의 농장보다 높은 환경적 요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체리를 수확한 후 아프리칸 베드에서 건조하는 것 이상의 품질을 보일 정도 입니다. 그래서 체리가 가진 본연의 특징을 극대화시켰다는 의미를 담아 풀 블룸이라고 이름 붙였다”라며 “특별한 이름이 커피를 이해하는 좋은 수단 이 되기를 바란다. 앞으로도 자세한 설명을 곁들여 구매자들이 다테하 커피를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스토리를 부여하는 이름 역시 사실을 기반으로 합니다. 이름에 담긴 뜻을 잘 이해한다면 커피의 로스팅 그리고 판매에도 긍정적인 요소가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조성된 가치소비 시대 속, 이러한 특색 있는 작명은 앞으로 커피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지 않을까 판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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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시각적 효과

커피의 이름에 색깔이 포함된 사례가 늘어가고 있습니다. 빨간색과 노란색으로만 구분되던 커피체리의 색상이 주황색, 분홍색, 자주색, 보라색 등으로 다양 화되면서 새로운 이름이 부여되고 있습니다. 이는 품종의 세분화와 맞닿아 있는 현상 입니다. 하지만 월드커피리서치World Coffee Research에서는 빨간색 체리 외에는 브라질에서 발견된 노란색 카투아이만을 정규 품종으로 인정할 뿐, 다른 색상의 체리는 정규 품종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기존 품종의 이름을 더욱 세분화 한 오렌지 문도노보, 퍼플 카투라, 핑크 버번 등은 더 높은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으나, 이러한 커피들의 향미가 기존 품종들의 것보다 더욱 뛰어나지는 않다고 합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로스터리 카페 대표는 “핑크 버번이나 퍼플 카투라 같은 이름이 붙으면 기존 품종보다 가격이 1.5배는 높다. 플라시보 효과인지 기존 품종보다 향미가 뛰어난 느낌이지만 실제로는 이들 커피의 향미적 우수성이 반드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판매가를 높이기 위한 마케팅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라고 말했습니다.
<커피리브레> 서필훈 대표는 최근 그의 SNS에 ‘커피 식물학자에게 질문한 결과 핑크 버번은 버번과는 상관이 없으며, 에티오피아 품종이란 답변을 받 았다. 시드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적었습니다. 어쩌면 색이 다른 모든 품종은 우리가 예상하는 바처럼 빨간색, 노란색 품종의 교차를 통해 탄생된 것이 아니라 원래 존재했지만 알려지지 않은 품종일 수도 있다는 단초를 제공합니다. 그럼에도 시각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특징을 커피 이름에 반영하는 것은 새로운 커피의 영역을 소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송호셕
사진  송호석, 월간커피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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