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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잘 날 없는 일회용품 규제의 현장

비즈니스 스터디

바람 잘 날 없는 일회용품 규제의 현장
보통은 그렇다. 어떤 새로운 정책이 고시되면 찬성과 반대 측이 균형 있게 나뉜다. 그런데 최근 일회용품을 타깃으로 한 정부의 규제는 기묘한 판세를 만들었다. 일별만으로도 옹호하는 목소리가 좀체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도 그럴게 내용도 진행 방식도 줏대가 없기 때문이다.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국민들은 작금의 형국이 당황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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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퇴 끝에 잰걸음

 일회용 컵 사용을 줄이고 컵의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 고안된 ‘일회용 컵 보증금제(이하 보증금제)’는 국내에서 2002년 6월 한 차례 시행된 바 있다. 당시의 보증금제는 시행 5년 9개월여 만인 2008년 3월에 폐지됐는데, 법적 근거 없이 소비자에게 보증금과 반납의 부담을 우는 것은 부당하다는 지적이 주요한 근거였다. 해서 정 부는 2020년 새로운 보증금제 고시를 앞두고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자원재활용법)」을 개정하며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시행 일자는 2년 뒤인 2022년 6월, 대상은 가맹점 수가 100개 이상인 프랜 차이즈 카페와 패스트푸드점 등 105개 브랜드의 전국 3만 8천여 개 매장이었다. 하지만 시행을 고작 20여일 앞둔 5월20일, 정부는 준비 부족과 소상공인들의 거센 반발, 코로나19 여파 등 을 이유로 들며 시행 일자를 12월로 전격 연기하기에 이르렀다.이를 두고 정부가 연기 발표 보름 전 진행한 보증금제 시범 사업에서 컵 반납과 회수 절차가 마련되 지 않아 지적받았다는 사실이 다시금 회자되기도 했다. 철저한 보완을 거쳐 뒤늦게나마 순항할 듯했던 보증금제는 그로부터 3개월 뒤인 9월 다시 한 번 암초를 맞이했다. 정부가 시행 지역을 전국에서 세종과 제주로 축소하고, 서로 다른 브랜드 간에도 컵 반납을 가능케 하는 교차반납 계획을 무산시킨 것. 여기까지가 작년 12월 세종과 제주에서 보증금제가 한정적으로 시행되기까지의 다사다난한 변천이다.

비슷한 시기인 작년 11월에는 보증금제와는 별도로 일회용품 사용 규제가 첫발을 떼기도 했다. 이는 2021년 12월 개정된 자원재활용법 규칙에 따른 것으로, 업종별 로 비닐봉지와 종이컵, 플라스틱 빨대 그리고 우산 비닐 등의 일회용품 사용을 제한한다. 카페의 경우 종이컵과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 젓는 막대를 제공할 수 없으나 테이크아웃시엔 가능하도록 예외를 뒀다. 그런데 이 또한 정부가 시행을 한 달 앞두고 돌연 1년간의 계도기간을 설정해 계획에 차질을 빚고 말았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규제 계획은 어떻게 될까? 먼저 전 국 단위의 보증금제 전망은 오리무중이다. 기사 작성일 (1월4일) 기준 정부에서 공표한 관련 내용은 없다. 현 행 ‘일회용 컵 보증금대상사업자 지정 및 처리지원금 단가 고시’에 따르면 2025년 12월 2일 전까지는 전 국에서 제도가 시작돼야 한다. 일회용품 사용 규제는 올해 11월 24일부터 계도 기간이 종료되어 법적 의무력이 발효된다. 

한둘이 아닌 맹점

  일회용품 관련 규제가 초입에 들어선 지금의 현장엔 다양한 문제가 산적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보증금제의 형평성이다. 세종과 제주로 지역이 한정된 데다 참여 대상으로 선정된 카페는 전체 매장의 8~10%에 불과하다. 이에 제주에선 467곳의 시행 매장 중 약 40%인 187곳이 보이콧을 선언하며 강력하게 불만 을 표명하고 있으며, 기껏 사업에 동참한 매장에서도 30~40%가량의 매출 감소를 맞닥뜨렸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회용품 사용 규제와 관련해선 실효성 의문이 거세다. 많은 프랜차이즈 업체가 규제가 발표됨에 따라 빨대 대신 입을 대고 마실 수 있는 드링킹리드를 도입했는데, 드 링킹리드 제조엔 일반 플라스틱 뚜껑과 빨대를 합한 것 보다 최대 54%가량 더 많은 플라스틱이 사용되는 것으 로 밝혀졌다. 정책의 빈틈 때문에 플라스틱 사용 저감이 라는 당초의 목적이 무실해진 셈이다. 더구나 정부는 예정에 없던 계도 기간에 돌입하며 정책의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계도기간 중에는 단 속이 이뤄지지 않아 업주의 입장에선 굳이 고객들의 불 만을 감내해가며 규제에 동참할 이유가 없다.

정부의 뒷걸음질에 피해를 본 이들은 카페 사업자뿐이 아니다. 컵 수거와 관련해 사업을 준비한 업체들 또한 막대한 손해를 봤다. 일찍이 관련 인력과 업체, 차량을 마련하고 보관장소를 임대하는 등 선뜻 정부의 뜻에 함께한 이들은 보증금제 시행이 급작스레 연기되자 최대1억원이 넘는 손실을 오롯이 감당하게 됐다.

그 중 인력과 업체 모집을 담당해 온 한국지역자활센터협회 관계자는 “결국 정부 정책에 적극 협조한 업체들만 피해를 본 꼴”이라며 상황을 비관했다. 그 밖에도 보증금제의 성공 여부를 판가름할 컵 회수율이 정상적으로 집계되지 않고 있다는 점과 정부차원의 홍보 부족으로 국민의 대다수가 보증금제를 인지조차 못하고 있다는 점 등이 문제로 거론되고 있다. 특히 소극적인 홍보가 낳은 여파는 다양하다.

일례로 별다른 발표가 없었는데도 어느 순간부터 보증금제의 교차반납이 가능한 것으로 시스템이 바뀌기도 해 업주와 소비자의 혼란은 또 한번 가중됐다. 일회용품 규제를 통해 정부가 증명하고자 한 것이 보여주기식 탁상공론은 아니었을 테다. 민심이 떠나간 자리에서 부랴부랴 정책을 보완하는 참사를 막을 시간은 아직 남아있다. 

 월간커피
사진  월간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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