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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티 커피 양극화의 기로에 서다Ⅰ

전문가 칼럼

스페셜티 커피 양극화의 기로에 서다Ⅰ 나노 랏, 컴피티션 랏, 그리고 커머셜 커피 스페셜티 커피 양극화의 기로에 서다
전 세계 커피 시장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긴 했지만, 반대로 일부 영역은 여전히 뜨겁다. 많은 이가 스페셜티 이상의 더욱 특별한 커피를 확보하고자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더욱더 양극화될 커피 시장에 대해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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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스페셜티 커피 신Scene
특별함을 넘어 더욱 특별하게
스페셜티 커피의 다른 이름은 ‘특별한 커피’다. 여기서 특별함이란 SCAA 커핑 폼 기준 80점 이상을 의미한다. 80점 넘는 커피가 전체 커피 생산량의 30%에 지나지 않았던 때의 이야기다. 하지만 2020년 현재 80점 이상의 커피를 찾는 것보다 80점 미만의 커피를 만나는 게 더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커피 제3의 물결’의 핵심 가치였던 스페셜티 커피는 수년 만에 그 의미가 퇴색되는 듯 보인다. A업체의 생두 바이어는 “80~82점짜리 커피는 더 이상 특별한 취급을 받지 못한다. 이제는 블렌딩에 사용해야 하는 수준의 커피가 되었다. 수년 전만 해도 82점이면 스페셜티 커피 중에서도 괜찮은 품질로 인정받았지만 이젠 결점두가 없고 단맛이 풍부한 정도의 커피에 그친다. 그래서 수입할 커피를 찾을 때 80~82점짜리는 85점 이상의 커피와 분리해 커핑한 후 용도에 맞게 선택한다”며 “산지에서도 80점짜리 커피를 특별하다고 지칭하지 않는다. 이제는 눈높이를 조금은 높여야 하는 시기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생산국의 조합 직원에게 물었다. 페루 인테그라커피 대표인 엘비스Elvis는 “바이어가 찾는 커피를 선정할 때 정말 특별한 커피는 ‘85점 이상’이란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 예전에는 80점이면 충분했고 83점만 되어도 굉장히 훌륭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확실하게 눈에 띄는 커피가 되려면 적어도 85~87점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흐름은 많은 국내 로스터리 카페에도 전해졌다. <커핑포스트> 이치훈 대표는 “국내에 들어오는 생두의 품질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산지에 가서도 느꼈지만 이제는 80~82점의 스페셜티 커피는 큰 이점이 없다”며 “스페셜티 커피를 넘어서는 품질의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탑Top 스페셜티’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스페셜티 커피를 넘어서는 커피에 붙일 용어가 마땅치 않다는 의견이 많다. 이 대표는 “많은 용어를 생각해봤는데 기존에 사용되는 표현 중에는 적합한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에 대해 많은 사람이 공감하면서 ‘새로운 개념 정립이 필요한 시점’이라 입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나노 랏, 옥션 랏, 컴피티션 랏 등 새로운 카테고리로 구분되고 있는 커피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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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션 랏Auction Lot
옥션 랏은 말 그대로 컵오브엑설런스CoE, 베스트오브파나마BoP 그리고 인헤르토, 퀴마, 게샤 빌리지 등 다양한 커피옥션에 출품된 커피를 지칭한다. ACE의 주최로 개최되는 CoE는 전 세계 15개 생산국에서 열리며 커피는 평가 결과에 따라 CoE 옥션, 내셔널위너 옥션 두 가지로 구분되어 판매된다. BoP는 CoE와는 조금 성격이 다르다. CoE는 제3자인 ACE라는 단체에서 주최하고 진행하지만 BoP는 한 해에 생산된 파나마 커피 중 무엇이 최고인지 가려내는 축제와 같은 행사로 파나마스페셜티커피협회SCAP에서 주관한다. 이밖에도 많은 커피옥션이 있는데 대부분 자국 내 심사위원 그리고 해외 바이어 심사위원의 커핑을 거친 후 최종 순위를 부여한다. 분명한 사실은 이 모든 행사를 진행하는 이유가 ‘농부들이 지속가능한 생산을 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즉, 최고의 커피를 찾고 이를 더 좋은 가격에 판매하도록 하려는 경쟁의 일환인 셈이다.
한편 옥션에서는 다른 커피보다 월등하게 품질이 좋은 커피가 1위를 차지하지만, 때에 따라 여러 가지 마케팅 요소로 인해 1위보다 더 높은 가격에 낙찰되는 커피도 있다. 예를 들어 지난해 페루 CoE에서 2위에 오른 누에바 프로그레소Nueva Progreso 농장의 잉카 게이샤Inka Geisha 품종 커피는 1위에 오른 라 루쿠마La Lucuma 농장의 마르셀Marshel 품종보다 파운드당 낙찰가가 약 10달러나 높았다. 게이샤가 가진 가치와 잉카라는 페루스러운 마케팅 요소라는 다양한 장점을 갖춘 커피였기 때문에 1위 랏보다 매력적이라는 데 이견이 없었던 것이다(그러나 ACE가 품종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 WCR에 의뢰하여 유전자 검사를 진행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옥션에 출품되었던 커피는 품질이 높을 것’이라는 기대심리는 더욱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밖에 옥션 랏은 스토리텔링 요소가 충분하며 커피의 향미적 특성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회 출전을 준비하거나 자신의 매장에서 특별한 커피를 판매하려는 이들이 선호하는 커피다. 하지만 단순히 순위만을 따지기보다는 객관적이고 냉정한 평가를 통해 커피의 본질을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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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 랏Nano Lot
‘나노’란 그리스어로 ‘아주 작은’이란 의미다. 이는 1나노미터의 준말로 10-9미터(10억 분의 1), 머리카락 두께의 5만 분의 1에 해당하는 크기다. 이를 이해하려면 마이크로 랏Micro Lot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마이크로 역시 아주 작은 크기를 뜻하지만 커피시장에서는 나노보다 큰 개념이다. 마이크로 랏에 대해 페루의 생산자 헴네르Gemner는 “내 농장 ‘로스 라우렐레스Los Laureles’에서는 품종을 구분하지 않고 카투라, 버번, 티피카를 함께 재배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고도가 높고 안개가 많이 끼는 비탈면의 커피를 유독 세심하게 관리한다. 이 구역에서 수확되는 커피를 수확부터 가공까지 꼼꼼히 관리해 2018 CoE에 출품한 결과 내셔널위너에 선정됐다. 다른 국가에서는 이렇게 관리하는 커피를 마이크로 랏이라 부르지만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스페셜티 커피시장이 급부상하면서 ‘많은 양을 생산해서 판매해야 더 큰 수익을 낼 수 있다’는 농부들의 고정관념이 깨지기 시작했고, 더욱 특별한 향과 맛을 지닌 커피일수록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큰 동기부여가 됐다. 페루 북부 하엔 지역에서 엘 디아만테 조합을 이끌고 있는 마빈Marvin은 “커피를 마이크로 랏으로 구분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커피를 수집하러 생산지역을 방문할 때 기후나 환경 혹은 품종적으로 차별화가 가능한 곳을 만나면 그 구역의 커피를 구분해서 수확·가공해달라고 요청한다. 이런 것을 마이크로 랏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며 “2019년 CoE가 우리 지역에서 열리면서 농부들이 고품질 커피 생산에 대한 동기를 갖게 됐다. 2020년은 코로나19 때문에 불확실성이 크지만 정말 특별한 커피를 구분해서 판매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농장 일부 구역의 커피에 대한 세심한 관리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2020년 현재는 마이크로 랏을 더욱 특별하게 하기 위한 ‘나노 랏’ 작업이 진행 중이다.
2019 월드바리스타챔피언십WBC 챔피언 전주연 바리스타가 사용했던 ‘콜롬비아 라팔마 엘 투칸 시드라Colombia El Tucan Sidra’같은 커피가 나노 랏의 대표적인 예다. 전 바리스타가 소속된 <모모스커피>에서는 “콜롬비아 라팔마 엘 투칸 농장은 새로운 품종과 프로세싱 연구를 통해 더욱 특출한 커피를 생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워리어 시리즈Warrior Series는 87점 이상의 커피로 150박스만 생산, 히어로즈 시리즈Heroes Series는 89점 이상의 커피로 전체 농장 생산량의 약 10%가 채 되지 않으며, 레전더리 시리즈Legendary Series는 92점 이상의 커피로 전체 농장의 생산량 중 약 1% 정도의 비중을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이뿐만 아니라 파나마의 핀카 데보라Finca Deborah 커피도 대표적인 나노 랏이라 할 수 있다. 게이샤라는 프리미엄에 특별한 가공법까지 더해져 최적의 대회용 커피로 알려져 있다. <커피게락> 주영민 대표는 “스페셜티 커피를 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가보기를 추천한다. 많은 농장을 가봤지만 데보라 만큼 완성도 높은 커피를 만들어 내는 곳은 없다. 이들은 완벽한 가공법을 설계하려 생물학자까지 고용해 화학적인 변화를 연구한다. 그만큼 가격이 매우 비싸지만 직접 가본 사람들은 ‘아, 이래서 비싸구나’ 하고 이해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나노 랏 커피는 대회에 출전하는 바리스타가 주로 찾으며 일부 카페는 행사용 혹은 홍보용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처럼 스페셜티 커피시장에서는 더 특별한 커피를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독특한 품종을 골라 재배하거나 최근 유행하는 가공법을 거침으로써 바이어에게 놀라움과 새로움을 선사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흐름을 반영해 생산자들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지만 코로나19 이슈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또한 바이어들은 ‘나노 랏’, ‘컴피티션 랏’ 수준의 최고급 커피를 원하는 수요는 늘 폭발적이지만 생산된 커피가 그러한 수준에 걸맞을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너무나 크다.

 송호석
사진  송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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