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머신 선택의 주안점
커피머신을 고를 때는 가장 먼저 예산을 살펴봐야 합니다. 대부분 카페를 여는 데 처음 생각한 금액의 1.5배 가량의 돈이 소요되게 마련입니다. 준비 과정에서 욕심이 점점 늘어나기 때문이죠. 머신도 마찬가지입니다. 500만 원 상당의 머신을 사려 했는데 1,000만 원으로 시선이 돌아가고, 그 이상 하이엔드 머신을 원하게 됩니다. 물론 비싼 머신을 쓰면 당연히 더 좋을 수밖에 없죠. 하지만 비싸고 좋은 머신을 알아보는 사람은 손님의 10% 정도입니다. 예산이 부족하다면 커피머신을 우선순위에 두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커피 맛에 영향을 주는 가장 큰 요인은 원두의 종류입니다. 그런데 희한하게 머신은 좋은 걸 쓰지만 원두는 좋지 않은 걸 사용하는 카페를 자주 보게 됩니다.
머신의 가격이 올라가는 요인을 살펴보면 '안정성'이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온도를 안정적으로 만들어 주거나, 추출의 유량이 일정하다든지. 카페라는 상업 공간에서는 커피를 연속으로 추출할 때가 아주 많습니다. 연속해서 10잔을 내릴 수도 있고, 정말 바쁘면 1시간에 100잔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좋은 머신을 구매하고 싶다면 우리 매장이 얼마나 바쁜지를 떠올려보면 도움이 됩니다. 바쁜 매장일수록 머신이 '비싼 값'을 할 수 있을겁니다. 그중 하나로 테이크아웃 전문점도 어느 정도 좋은 머신을 살 필요가 있습니다. "작은 매장에서 테이크아웃으로 커피를 제공하는데 머신이 좋아야 할까?"라고 반문할 수도 있으나, 단시간에 많은 커피를 추출한다면 음료의 퀄리티는 물론이고 단골손님 확보를 위해 머신에 투자하는 것이 좋습니다.
가변압과 유량조절
안정성에서 나아가 더 높은 가격대의 머신이 지니고 있는 기능이 '가변압' 혹은 '유량 조절'입니다. 이 기능만 들어가면 커피머신의 가격이 상당히 높아지는데, 많은 소비자가 이 기능에 현혹됩니다. 하지만 막상 이 기능을 무엇에 어떻게 쓰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가변압이라는 기능은 맛보다 효율과 안정적인 추출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가변압 머신의 '프리인퓨전'이라는 기능은 핸드드립에서 뜸을 들이듯 에스프레소 커피 퍽을 천천히 적셔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기능을 통해 커피 퍽이 아주 천천히 적셔지면서 다소 가늘게 분쇄되어 저항이 큰 커피 퍽도 추출이 가능해지죠. 즉, 더욱 다양한 분쇄도로 더욱 다양한 추출을 할 수 있습니다. 허나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어쩌면 상업 매장에서보다는 연구실이나 가정용에 더 적합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정말 커피에 집중하는 매장이라면 이런 기능이 더할 나위 없겠죠.
머신 선택의 기준은 예산이 되어야 합니다. 예산이 부족하다면 구입 부담을 조금 낮추고 그 돈으로 브랜딩을 맡기는 것이 장기적으로 좋을 수 있습니다. 운영자의 욕심으로 만들어진 매장은 생각보다 손님에게 좋은 경험을 제공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원두 선택의 기초
원두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민감하고 조심스러운 일이지만, 조금 언급해보고자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정말 다양한 로스터리와 블렌딩이 존재합니다. 어느 로스터스는 블렌딩 종류만 20여 가지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그렇게 다른 맛을 만들어 낼까요? 너무 많은 블렌딩을 소유한 곳의 커피는 오히려 관리가 잘 되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로스터리로 원두 납품을 해보면서 느끼는 점은 더 좋은 퀄리티보다 안정적인 공급이 중요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나 소비자 입장에서 너무 장인정신을 강조하는 로스팅 업체보다는 좋은 재료를 합리적으로 전달하는 업체가 편할 수 있습니다. 원활한 소통과 안정적인 수급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요즘의 생두시장이 다양화된 데 있습니다. 다양한 나라, 다양한 품종, 다양한 가공방식, 물론 여러분의 매장이 그런 것들을 원하는 매장일지는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점검해봐야 합니다. 평소에 마시는 커피, 입맛에 맞는 커피를 찾고 그것을 바탕으로 커피를 선택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선택의 중심점
예를 들어, 두 가지 경우를 가정해보겠습니다. 창업자가 만들고자 하는 매장이 오직 커피에 집중된 카페라면 창업자나 직원들이 커피를 좋아하고 잘 알아야 하며, 이 경우 커피의 다양성을 시도해볼 여지가 있습니다. 두 번째 경우는 커피를 잘 모르지만 좋은 커피를 팔고 싶은 카페입니다. 이 경우 상황이 어려워집니다. 재료가 좋아질수록 어쩔 수 없이 산미가 있는 경우가 많이 생깁니다. 창업자 입맛에 익숙하지 않은 산미 있는 커피를 판매하게 되면 손님의 아주 작은 클레임에도 흔들리게 되고, 커피 맛이 변하게 됩니다. 대중적인 커피는 다소 산미가 없는 경우가 많고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산미를 선호할 확률이 높습니다. 커피를 판매하는 것은 매장에서 추구하는 커피 철학을 판매한다는 것과 아주 흡사하죠. 손님이 항상 우선이지만, 커피 맛에 있어서는 운영자의 추향을 우선시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모두에게 맛있는 커피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점은 본인이 어떤 커피를 즐겨왔는지를 파악하고 정확한 농도로 만들어진 산미 있는 커피에 익숙해지는 것이죠. 그 후에 매장의 콘셉트, 머신과 그라인더 세팅을 보면서 디테일을 정하면 됩니다. 이때 너무 많은 업체의 샘플을 맛볼 필요는 없습니다. 커피 맛이라는 것은 가변적이기 때문에, 단 한번도 똑같은 로스팅이나 똑같은 추출이 나오지 않습니다. 샘플의 맛을 맹신할 필요도 없고, 대략적인 흐름과 톤을 중요하게 파악하면 되죠. 일정 수준 이상의 로스팅 포인트에서는 재료 맛의 영향이 적어지기 때문에 미묘하고 세세한 맛들에 초점을 맞추며 선택이 어려워집니다. 또한 너무 값이 싼 커피는 실제로 건강에 안 좋을 수도 있습니다. 대중적인 커피는 항상 합리적인 가격이 중요하나 너무 싼 가격의 커피를 선호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로스터가 합리적인 가격을 유지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원두를 선택할 때는 가장 먼저 스스로 추구하는 커피 철학과 기존의 경험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후 가격과 매장 콘셉트를 고려하면 선택이 한층 수월해질 것입니다.
글 <블랙로드커피> 이치훈 대표
창업이 쉽지 않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잘 말해주시네요
2021-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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