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사람의 한 걸음이 모이면
서울 은평구 녹번동에 위치한 서울혁신파크. 혁신가들의 사회혁신플랫폼이자 시민들의 놀이터가 되어주는 이곳의 입구를 따라 들어가다 우측으로 고개를 돌리면 아담한 텃밭에 둘러싸인 <카페 쓸>이 있다. 동화 속 요정의 집 같은 이곳은 원래 환경 활동가들이 전기와 화학물질이 없는 비전화(非電化) 공간을 목표로 지은 건물이다. 나무와 흙, 볏단을 이용해 사람의 손으로 완성한 이 공간을 배민지 대표가 알게 된 것은 이곳이 지어질 당시 그 과정을 취재하러 왔을 때였다. 배 대표는 카페를 열기에 앞서 2018년 『매거진 쓸』을 창간했는데, 이는 쓸 수 있는 자원에 대해 생각하며 생활하는 ‘제로웨이스트 라이프’ 이야기를 담은 잡지다. 후에 활동가들의 프로젝트가 끝나면서 공간이 비게 되자 좋은 뜻이 담긴 이곳에서 그는 같은 비전을 이어나가고자 2021년 겨울, 잡지의 이름을 딴 비건 카페를 열게 됐다. “처음엔 커다란 명제인 환경보다는 내 앞에 생기는 쓰레기 문제에 관심을 가졌어요. 오랫동안 쓰레기 없는 생활을 하다 보니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이 육류 위주의 식사를 하고 쓰레기가 넘쳐나는 삶을 살도록 방조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환경을 보전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리기 위해 잡지를 창간하기로 결심한 거죠.”
카페 쓸은 공간이 지어진 취지에 맞게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으며 비건 식음료만을 판매하는 제로웨이스트 카페다. 일반적인 카페에서 쉽게 사용되고 버려지는 일회용 컵과 빨대, 티슈를 이곳에선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대신 다회용 컵과 빨대, 수건 냅킨을 구비해 이 안에서만큼은 한 사람의 소비가 불필요한 낭비로 이어지지 않도록 했다. 테이크아웃은 텀블러를 이용해야 하는데, 텀블러가 없는 손님에겐 기부받아 모은 텀블러를 무료로 대여해준다. 감사하게도 양심적으로 반납하는 손님이 많아서 별다른 불편함 없이 운영된다고. 이곳에선 카페를 감싼 텃밭 정원을 십분 활용하는 커뮤니티 활동도 활발하게 이뤄진다. 매주 목요일마다 텃밭 정원을 가꾸는 모임을 하는데, 텃밭에서 난 채소들로 함께 요리를 해 먹으며 식품이 우리 식탁에 올라오기까지의 과정을 다시 한번 생각하고 감사함을 되새긴다. 또, 텃밭에서 자란 식물들에서 모은 씨앗을 대출해주는 ‘씨앗 도서관’을 운영하는데, 누구나 씨앗을 빌릴 수 있고 추후 심은 식물이 씨앗을 맺으면 채종해 반납하면 된다.
사람과 자연을 잇는 공간
카페 쓸에서는 반려견을 위한 ‘멍푸치노(펫밀크)’를 제외하고는 모든 메뉴를 비건으로 만나볼 수 있다. 커피는 인근에서 무포장으로 납품받을 수 있는 개인 로스터리를 통해 수급하며 포장 용기를 지참하면 무게를 달아 원두를 구매할 수도 있다. “비건 음료를 만드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아요. 다만 대체 우유와 어울리는 원두를 찾는 게 조금 어려웠죠. 지금은 모든 메뉴에 우유 대신 비건 두유를 사용하는데, 처음엔 손님들이 낯설어했지만 한번 마셔보고는 생각보다 맛이 좋고 특히 속이 편하다는 긍정적인 반응이 많아요.”
무더운 여름철에 많이 찾는 에이드는 시즌마다 재료를 조금씩 달리하는데, 이때도 텃밭이 맹활약한다. 올여름 한정 판매하는 ‘텃밭 민트 모히또’와 ‘토마토 바질 에이드’는 모두 텃밭에서 수확한 허브를 이용해 만든다. 보통 모히또에는 애플민트만 들어가지만 텃밭 민트 모히또는 텃밭에서 나는 페퍼민트, 애플민트, 박하 등 갓 따온 갖가지 민트류가 들어가 한 모금만 마셔도 등허리가 서늘한 청량감을 느낄 수 있다. 바질 토마토 에이드는 비정제 원당과 바질을 넣고 숙성한 방울토마토청과 으깬 바질잎이 들어가는데, 바질과 토마토의 향이 개운하고 당도가 강하지 않아 들척지근하지 않고 깔끔하다. 에이드에 들어가는 탄산수는 카페에서 직접 제조해 첨가물 걱정 없이 안심하고 마실 수 있다.
디저트 역시 비건으로 제공한다. 비건 베이킹은 보다 전문적인 공부가 필요한 분야이므로 시작하기에 앞서 비건 베이커리를 운영하는 선생님에게 일대일로 강습을 받았다. 이때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텃밭에서 난 재료와 계절마다 가장 맛있는 제철 재료로 파운드케이크와 머핀, 스콘 등을 굽는데, 말하지 않으면 비건인지 모를 정도로 일반 구움과자와 비슷한 식감을 자랑한다. 지난번 카페 앞 나무에서 딴 앵두에 이어서 이번 여름엔 초당옥수수가 들어간 머핀을 준비했다. 비건 베이커리라면 왠지 퍽퍽할 것 같다는 선입견과는 반대로 속까지 부드럽고 촉촉하며 중간중간 옥수수 알갱이가 톡톡 씹히며 재밌는 식감을 더한다.
카페 쓸이 위치한 서울혁신파크는 조성된 지 고작 8년 만에 재개발로 사라질 위기해 처했다. 서울시가 이곳 부지에 60층짜리 고층 빌딩을 포함한 복합상업문화 공간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 한편에서는 ‘사업 타당성 조사 및 주민 의견 수렴이 부족하다’, ‘시민들의 공론의 장이자 열린 녹지공간을 지키자’는 이유로 사업을 반대하는 이들이 있다. 배 대표도 그들 중 하나다. “처음엔 환경적인 취지로 카페를 오픈했지만 운영하다 보니 공원을 찾은 친구, 연인, 가족 등 다양한 사람이 찾아오고 서로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는 걸 보게 됐어요. 현재 최우선적인 목표는 여러 존재를 잇는 매개체로 역할하는 이 공간을 지키는 것이고 앞으로 50년, 100년 동안 오래갈 수 있는 카페가 되는 것입니다.
비건 & 지속 가능성 카페 운영 팁
∙맛있는 비건은 꿈같은 이야기가 아냐
비건 음식은 막연히 맛없다는 인식이 존재하지만 재료 간의 궁합을 잘 연구하면 동물성 재료가 들어간 것보다 오히려 더 맛있는 메뉴를 만들 수 있다. 환경을 생각해서가 아닌 맛있어서 먹고 싶은 비건 메뉴를 개발해보자.
∙충분한, 그렇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설명
비건 카페가 흔하지 않은 만큼 비건 메뉴를 낯설어하는 손님이 많다. 먼저 환경 보호 같은 이야기를 꺼내기보단 어떤 맛이 나는지를 설명하고, 먹어본 손님이 왜 비건 메뉴를 판매하는지 궁금해하면 그때 카페의 취지를 설명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