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효란 무엇일까?
식품산업에서는 발효를 '유기물이 미생물에 의해 사람에게 이로운 물질로 전환되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생화학에서는 좀 더 제한적으로 '무산소 조건에서 당을 분해해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언뜻 생각해보면 '부패'와 유사해 보이지만 두 개념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유기물의 변화가 우리에게 해롭지 않다면 발효이고, 반대로 해로울 경우에는 부패라고 본다는 점입니다.
1. 커피에서의 발효
커피 산업에서는 '점액질을 제거하는 과정'을 발효라고 합니다. 과율과 함께 생두를 감싸고 있는 점액질은 펙틴과 섬유소 같은 다당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워시드 가공에서는 커피를 수조에 넣는 발효 단계와 건조 단계가 구분되어 있는 반면, 내추럴 가공은 발효 단계를 따로 명시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내추럴 가공에서는 발효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오해할 수 있으나, 사실 발효와 건조가 동시에 진행된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2. 발효는 어떻게 이루어지나?
에너지를 얻는 데 산소를 필요로 하는 사람과 다르게 미생물들은 무산소 상태에서도 에너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발효'라고 부르는 이 과정은 크게 세 종류로 구분할 수 있으며 당류를 분해해서 에너지를 얻고, 부산물로 이산화탄소와 알코올, 산(Acid)을 만들어냅니다.
[그림1]과 같은 과정을 통해 포도즙과 맥즙이 와인과 샴페인, 맥주로 변합니다. 이때 와인이나 맥주는 저마다의 독특한 향미를 가지게 됩니다. 이는 발효의 또 다른 부산물인 이차대사산물 덕분입니다.
발효 중 일어나는 생화학적 변화
커피를 발효하는 과정 중 눈에 띄는 변화는 크게 두 가지 영역에서 일어납니다. 첫 번째는 점액질이 있는 발효조, 그리고 생두입니다. 미생물들은 생두보다 점액질이나 과육을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본 기사에서는 발효조에서의 변화를 중점적으로 살펴볼 예정입니다.
1. 미생물의 변화
미생물은 발효 초기 4~6CFU/g 수준에서 약 48시간 정도의 발효 후에는 8~9CFU/g까지 증가합니다. 그러나 왕성하게 성장하는 미생물 종은 소수이기 때문에 다양성은 발효시간이 지날수록 감소합니다.
2. pH 변화
발효가 진행되는 동안 미생물들이 유기산을 생성하기 때문에 pH는 발효 초기 pH 5~6수준에서 약 48시간의 발효를 거친 뒤에는 pH 4 정도로 떨어집니다.
커피 발효의 주요 미생물 그룹
미생물들은 저마다 조금씩 다른 대사물을 만들기 때문에 발효 결과물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발효 중 미생물은 양적으로 증가하지만, 모든 미생물종이 증가하는 것은 아닙니다. 커피 발효 중 가장 많이 발견되는 미생물 그룹에는 젖산 박테리아와 이스트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둘을 통칭해서 미생물이라고 부르지만, 이는 로부스타와 아라비카를 통칭해 식물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두 미생물 그룹은 거리가 먼 편입니다.
발효의 역동성
필자는 2015년 즈음 처음 시장에 소개된 무산소발효 커피를 맛보고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기존 워시드와 내추럴 커피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독특한 향미 때문이었습니다. 이후에도 와인이나 맥주산업에서 사용하는 방식에서 착안해 탄소침용, 이스트 균주 접종 등이 커피 가공에 활용되어왔습니다. 덕분에 커피 향미는 한층 더 다양하게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발효가 부여하는 향미의 복합성과 독특함은 미생물들의 이차대사산물 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대사산물들은 미생물의 양과 다양성, 발효 기질의 종류와 상태,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어떤 요인들이 발효 결과물에 영향을 주는지 알아보겠습니다.
1. 미생물의 다양성
미생물의 초기 구성은 발효 중 미생물 성장 패턴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초기 미생물 풀(Pool)은 커피체리의 상태나 농장 환경, 가공 머신이나 발효조의 상태, 작업자와의 상호작용 등에 따라 달라집니다. 발효가 진행되는 동안 미생물들 간의 경쟁이 일어나고 여기서 우점하는 발효종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발효 초기 높은 다양성은 발효가 진행될수록 감소하고, 상대적으로 소수의 미생물 군락이 우점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미생물의 다양성은 다음과 같은 요인에 영향을 받습니다.
2. 프로세싱 방법
발효에 있어 미생물 구성만큼 중요한 요소로는 기질의 변화를 꼽을 수 있습니다. 내추럴과 워시드 가공의 경우 체리 상태와 환경이 제각각이라 발효가 워시드 발효보다 미생물 다양성이 높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내추럴 발효 초기에는 박테리아의 비율이 높습니다. 그러나 건조가 진행될수록 수분활성도가 떨어지면서 상대적으로 높은 수분활성도를 요구하는 박테리아는 줄어들고 이스트와 곰팡이류가 증가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무산소 가공은 산소를 최소화한 상태에서 발효를 진행하는 방식입니다. 공기 중에는 수많은 미생물이 존재하며 산소 유무는 미생물의 다양성을 결정짓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따라서 무산소 환경은 공기 중에 존재하는 미생물에 의한 의도치 않은 오염을 막을 수 있고, 더욱 통제된 환경에서 발효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