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차를 수입하고 유통하는 일을 한다고 말했을 때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보이차는 어떠냐는 말이었다. 소장하고 있던 보이차를 가지고 와서 진품인지 아닌지 살펴봐달라는 사람은 또 어찌나 많은지. 솔직히 털어놓자면 차를 즐긴 지 서른 해 가까이 되어가지만 보이차를 제대로 공부하며 경험을 깊게 쌓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들리는 이야기는 너무나 많은데 전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대체 누구의 말에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할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마셔볼까 싶어 차 가게에 갔다가 가격표에 붙은 0의 개수를 쳐다보기조차 두려운 보이차와 그보다 더 비싼 은주전자를 강권 받고 치를 떨며 나온 기억이 적지 않다. 지금 집에 있는 차는 모두 버리라는 조언 아닌 조언은 덤. 가볍게 차를 즐기러 왔을 뿐인데 어쩐지 돈 내고 야단맞는 듯한 억울한 기분까지 든다. 이런 식으로 보이차와 거리를 두게 된 사람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리라.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미 알고 있겠지만 본래 모카커피는 초콜릿시럽을 넣은 에스프레소 음료의 이름이 아니라, 일찍이 커피를 재배한 나라 중 하나인 예멘에 있는 항구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곳 알 모카Al Mukha에서는 커피나무가 자라지 않지만 인근 지역에서 생산된 커피가 모여 유럽으로 수출됐기에 그 이름이 알려지게 됐다. 보이차도 이와 마찬가지다. 보이차는 중국 운남성 남서쪽에 위치한 보이(普洱)시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당시에는 사모(思茅)시라고 불렸던 이 지역을 포함한 행정 구역의 이름이 보이현이었으며, 차 무역이 한창이던 청나라 시기에 보이현은 운남성 전체를 총괄하는 행정중심지였다. 운남성 전역에서 재배되는 모든 차는 보이에 모여서 말끔히 포장됐고 여기에 찍힌 보이라는 글자가 곧 차의 이름이 됐다. 현재 중국 정부에서 지정한 지리적 표시제에 따르면 보이차는 운남성 내에서만 재배하고 만들어져야 한다.
많은 사람이 보이차가 어렵다고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보이차라고 부르는 차가 크게 두 가지이기 때문이다. 하나는 생차(生茶)라고 불리는 거의 녹차에 가까운 맑은 차이며 다른 하나는 홍차보다 더욱 짙은 초콜릿 빛 수색을 띠는 숙차(熟茶)다. 이 둘은 잎의 모양새부터 수색과 맛까지 전혀 다르기에 어느 쪽을 먼저 만나느냐에 따라 보이차에 대한 인상이 완전히 바뀔 수 있다. 그럼에도 흔히 보이차라고 하면 이 둘의 개념을 혼용해서 사용하는 경향이 있어 입문자의 입장에서는 크게 헷갈릴 수밖에 없다.
생차와 숙차가 아예 다른 차인 것은 아니다. 첫 번째 건조를 마치는 시점까지는 생차도 숙차도 같은 차다. 이를 쇄청모차(曬靑毛茶)라고 한다. 모차라는 것은 어떤 차를 만들기 위한 밑 작업, 즉 초제(初製)*가 끝난 차를 의미한다. 쇄청은 햇볕에 말린다는 뜻으로 쇄청모차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1차 가공을 마친 일광 건조한 녹차다. 일반적으로 녹차를 만들 때는 열을 충분히 가해 산화 효소가 활성화하는 걸 완전히 억제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생차든 숙차든 보이차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가공 후 숙성을 염두에 둔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지금과 같이 포장지에 담아 차를 유통할 수 없었으므로 찻잎에 증기를 쐰 다음 무거운 물건으로 눌러 부피를 최대한 줄이고 운반에 편리하게끔 모양을 잡아야 했다. 네모난 벽돌처럼 생긴 것부터 손잡이가 달린 버섯 모양까지 크고 작은 다양한 형태가 있지만 그중 가장 보편적인 것은 보이차라고 하면 누구나 가장 먼저 떠올리는 납작한 원반 모양이다. 보이생차는 쇄청모차를 성형하는 것에서 제다 과정이 끝난다. 완성된 보이생차는 그대로 마셔도 좋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숙성하며 그 가치를 더한다.
생차와 숙차부터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납작하게 눌린 덩어리든 낱잎이 살아있는 형태든 모습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갓 만들어진 햇보이생차는 모양새가 녹차와 거의 비슷하다. 특히 수령이 오래된 나무의 잎으로 만든 것은 맑지만 진득하고 향기롭다. 평소 산화도가 낮은 차들이 지닌 아로마를 즐긴다면 보이생차가 마음에 들 것이다. 한편 짙은 고동빛을 띠는 보이숙차에는 단숨에 응축된 농밀한 시간의 맛이 있다. 쓰지 않고 부드러운 맛 위로 다소 낯설지만 어쩐지 편안하고 익숙한 달큼한 내음이 얹혀있다. 이 둘 중 어느 쪽이 취향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막 보이차를 마시기 시작하는 이를 위해 둘 중 한 가지만 골라야 한다면 나는 보이숙차를 먼저 권하고 싶다. 다소 이질적인 향기를 풍기지만 쓰거나 떫지 않으며 짙은 풍미를 지닌 보이숙차는 커피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도 무척 달가울 테다. 어디서 사야 할지 고민된다면 먼저 ‘대익보이차’ 같은 큰 회사의 제품을 고려해보는 게 좋겠다. 위생적인 환경에서 안정적으로 생산되므로 믿을 수 있는 품질의 차를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 누가 어떻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 보이차의 맨얼굴을 찬찬히 살피고자 노력한다면 아마 지금까지 몰랐던 보이차의 매력에 이내 푹 빠지게 될 것이다.
https://experience.arcgis.com/experience/c756a4761cba42f4a1b9d03fd1762202
2024-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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