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로 무산소발효 커피의 확대다. 2018년 CoE에서는 콜롬비아에서 1개, 코스타리카에서 1개의 커피만 순위에 오른 무산소발효 커피가 2019년 8개로 크게 확대되었으며([ 표2 ] 참고) 심지어 코스타리카에서는 챔피언에 올랐다. 무산소발효 커피로 가장 많이 알려진 콜롬비아 엘 파라이소 농장은 2018~2019년 2년 연속 순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무산소발효는 콜롬비아, 코스타리카에서 시작되어 2018년에는 이를 시도하는 국가가 드물었다. 하지만 2019년 CoE 최종순위에서 확인된 바로는 브라질,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등의 국가에서도 무산소발효가 시행되며, 이 밖의 국가에서도 폭넓게 시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필자의 에티오피아 파트너인 다예 벤사 QC 매니저인 앗킬트 데제네Atkilt Dajane는 에티오피아에서도 무산소발효가 시도되고 있다며 커피를 그레인프로Grainpro 백에 담아 웨어하우스에 보관하는 사진을 보내온 바 있다. 필자가 올해 10~11월호에 연재한 바 있는 무산소발효 가공법은 생각보다 더 폭넓게 전 세계 커피 생산국에서 시도되고 있으며, 이러한 움직임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이다. <어라운드커피> 탁영준 대표는 “현재 브라질 다테하 농장의 커피를 수입·유통하고 있는데, 올해 다테하 옥션랏 커피에도 무산소발효 커피가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기존 커피에 비해 독특하고 매력적인 향미가 특징”이라며 “우리나라뿐 아니라 대만, 일본 등 다른 소비국에서도 색다른 향미의 무산소발효 커피에 대한 선호가 뚜렷하기 때문에 그 열기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무산소발효는 가공과정에서 생성된 독특한 향신료의 뉘앙스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기는 하지만,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번 카페쇼에서 만난 콜롬비아 빌라 클라라 아시아 세일즈 담당자 패기 린Peggy Lin은 “콜롬비아 전역에 무산소발효 열풍이 불고 있다. 훨씬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시장 상황 때문인지 모든 농부들이 무산소발효를 시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빌라 클라라 농장에서도 무산소발효법으로 가공한 랏들을 판매하고 있는데 호응이 좋은 편이다. 이 트렌드가 얼마나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가장 뜨거운 이슈임에는 분명하다. 이러한 영향에 힘입어 또 다른 가공법도 시도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더욱 다양한 가공법이 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 표2 ] 2019 CoE 무산소발효 커피 현황
세 번째 트렌드는 게이샤의 건재 속 품종 다변화이다. CoE 상위 커피 중에서는 게이샤와 파카마라 품종이 단골손님이었다. 2019년 게이샤가 챔피언에 오른 CoE 국가는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온두라스, 멕시코 4개국이었고 파카마라는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2개국으로 집계되었다. 즉 게이샤와 파카마라가 여전히 건재함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챔피언을 제외한 CoE 수상 커피도 같은 양상을 보였다. 특히 코스타리카는 28개의 커피 중 11개가 게이샤였고 엘살바도르는 25개의 커피 중 19개가 파카마라였다. 또한 버번의 재배 비중이 압도적인 브룬디를 제외하고 브라질은 옐로우 카투아이가, 페루는 마르셀(버번 돌연변이)가 차지했다는 것이 눈에 띄었다. 올해 옥션에서 가장 높은 점수의 커피는 94.84점을 받은 온두라스 1위 커피로 워시드 게이샤 품종이었다. 몇몇 커피인들은 이 커피를 ‘갓두라스’라 부르며 뛰어난 향과 맛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게이샤와 파카마라의 독주와 관련하여 추승민 바리스타는 “게이샤의 섬세하고 압도적인 산미가 CoE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에 적합하다. 당분간은 게이샤를 이길 수 있는 품종이 없지 않을까 싶다. 게이샤의 아성을 뛰어넘을 것이라 평가된 품종이 몇 가지 있으나, CoE 성적이 현재로서는 게이샤가 가장 뛰어난 품종임을 증명한다고 생각한다. 게이샤에 비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품종이 파카마라로, 이는 특정 테루아에서 폭발적인 향미를 보인다. 특히 과테말라, 엘살바도르에서 가끔 믿기지 않는 품질의 커피가 나타나기도 하는데 올해가 그런 경우가 아닌가 생각한다. 역시나 과테말라 인헤르토 농장의 파카마라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브라질, 페루에서는 게이샤·파카마라 외 다른 품종이 1위를 차지했다. 이와 관련해서는 페루의 품종에 관해 이야기가 많다. 2019 페루 CoE 1위 커피의 품종은 ‘마르셀Marshel’이라 적혀있다. 챔피언 농장인 ‘라 루쿠마La Lucuma’ 농장주인 그리마네스Grimnes는 “이 품종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수년전 질병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품종이다. 그래서 마르셀이란 이름을 붙여줬다. CoE 성적이 말해주듯 뛰어난 품질의 품종이라는 것만큼은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는 CoE 홈페이지에 ‘버번 돌연변이(Bourbon mutant’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름만 들어보면 프랑스에서 개량되어 탄생한 사치모르 계통의 ‘마르세사Marshellsa’와 같은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페루의 농부들은 1위 커피의 품종이 마르셀이라는 것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다. 이번 카페쇼에 한국을 방문한 아프로쿠르마Aprocurma의 대표 호세Jose는 “마르셀은 원래 페루에서 재배되는 품종인데 향미가 뛰어나지 않다. 따라서 이번 CoE 1위 품종은 마르셀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나무의 형태가 비슷한 파체Pache 계통의 품종이지 않을까. 실제로 고지대에서 자라난 파체는 CoE 커핑 노트에 적힌 뉘앙스를 특징으로 가진다. 특히 농장이 위치한 라 코이파La Coipa 지역은 해발고도 1,700~1,800m의 고지대로 파체의 잠재력이 폭발하기 매우 좋은 환경적 요인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비단 호세 혼자만의 의견이 아니었다. 라 코이파 지역에서 커피를 경작하는 마빈Marvin은 “이 지역 고지대에서 생산되는 파체 품종은 매우 큰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CoE 공식 홈페이지에 버번 돌연변이 혹은 마르셀이라 적혀있지만, 나는 파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코스타리카 95, 가르니카Garnica, 메즈클라Mezcla, 베르나디나Bernardina, 산 로케San Roque, 따비Tabi, 오바타Obata 등 낯선 이름도 눈에 띈다. 이는 질병에 저항성을 높이거나 생산량을 증대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변이 및 개량된 품종들로,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많은 농부에게 선택되고 있다. 특히 산 로케는 농부들을 돕기 위한 스타벅스의 품종 개발 프로젝트에 의해 탄생한 품종이다. 뛰어난 품질을 지닌 티피카를 선별하여 배양해 2015년경 코스타리카에 보급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밖에도 엘살바도르 파카스 농장에서 발견된 베르나디나, 콜롬비아의 따비, 브라질의 오바타 등 다양한 품종이 각자 특성대로 재배되고 있다.
CoE가 지닌 파급효과
2019 서울카페쇼의 많은 업체 부스에서 CoE 샘플을 커핑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이 자리에는 바리스타, 로스터뿐 아니라 다양한 커피 애호가까지 자리했다. 이 자리에 참가한 한성원 바리스타는 “브라질 CoE 커피를 맛보았는데 기존에 생각하던 브라질 커피와는 차원이 달랐다. 커피를 시작한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CoE 커피는 이름 자체로 기대감을 갖게 한다. 기회가 있다면 다른 나라의 CoE 커피도 맛보고 싶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체의 CoE 커핑에 참가했다는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CoE가 진행되는 모든 나라의 샘플을 맛볼 수 있다는 건 매우 행복한 일이다. 이런 커피가 커피인들의 잔치에 사용되는데 그치지 않았으면 한다. 더 많은 소비자들이 직접 맛보고 스페셜티 커피의 매력에 빠져들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소비자가 좋은 커피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긴다”고 말했다.
실제로 CoE는 농부들에게도 매우 큰 도전이자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온두라스에 있는 A농장의 농장주는 “우리 농장은 대부분 IHcafe 90, 렘피라Lempira 같은 개량 품종으로 기존 품종을 대체한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CoE에 출품하기 위한 목적으로 파라이네마, 게이샤 등을 가장 높은 곳에 심고 심혈을 기울여 재배하고 있다. 대부분의 커피 농장이 전체 커피 품질이 뛰어난 건 아니다. CoE에 이름이 올라감과 동시에 농장 전체의 커피 가격이 높아지기 때문에 이러한 효과를 누리기 위해 출품 커피만을 특히 신경 써서 재배한다”고 말했다. 페루 남부 B농장의 농장주 역시 “CoE가 시작된 후 많은 농부의 생각이 달라지고 있다. CoE를 타깃으로 특별한 품종을 정성껏 재배하는 것이 전체 농장을 잘 가꾸는 것보다 더욱 큰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말한다. 좋은 품질의 커피 생산을 위해 노력한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보여주기식 재배는 길게 봤을 때 부정적 효과를 일으킬 수 있어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소비국 역시 CoE를 하나의 마케팅 요소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CoE 커피를 구매하는 첫 번째 이유는 물론 특별한 품질의 커피를 구하기 위함이겠지만, CoE 홈페이지에 회사 이름을 등재시키기 위한 목적도 존재한다. 공신력 있는 커피를 구매했다는 효과를 누릴 수 있어 매우 효과적인 마케팅이라 생각한다. 단 하나의 커피를 구매하더라도 ‘CoE 커피를 구매하는 믿을 수 있는 스페셜티 커피 회사’라는 이미지를 얻을 수 있기에 옥션에 참여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CoE는 세계에서 가장 공신력 있는 스페셜티 커피 대회다. 그렇기 때문에 CoE에 이름을 올린 농장의 농장주는 더욱 높은 가격에 커피를 판매할 수 있고, 소비자는 그 인지도와 품질에 걸맞은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 커피를 구매한다. 이는 수익성이 너무 낮고 일이 너무 힘들어 농사를 포기하는 생산국의 현실을 개선할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사안이자 가치투자라 할 수 있다. 현재 페루에서 커피 농사를 짓고 있는 가르시아Garcia는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좋은 커피를 생산하는 것은 매우 힘든 작업이다. 하지만 그 가치를 알아주는 바이어를 만나기란 너무나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CoE는 매우 좋은 플랫폼이며, 나도 그 플랫폼에서 구매자를 만나기 위해 조금 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커피가 있다. 나도 CoE 순위표에 이름을 올리고 싶다”고 말했다.
알찬 내용 감사합니다~
2020-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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